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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산록 0
 작성자: 운영자  2009-09-08 14:35
조회 : 6,764  


위 산 록
(四家語錄)

 

 1. 행록


{{19 위앙록
}}

 

 

 


 위산스님의 휘(諱)는 영우(靈祐:771∼853)이며 복주(福州) 장계(長谿) 땅 조씨(趙氏) 자손이다. 15세에 출가하여 본군(本郡) 건선사(建善寺) 대매 법상(大梅法常:752∼839)스님에게 머리를 깎았고, 항주(杭州)의 용흥사(龍興寺)에서 대소승(大小乘)의 교리를 연구하였다. 23세에 강서(江西)로 가서 백장 회해(百丈懷海:749∼814)스님을 참례하게 되었는데, 백장스님이 한번 보고는 바로 입실(入室)을 허락하여 마침내 참선하는 납자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어느날 백장스님을 모시고 서 있는데 스님께서 물으셨다.
 "누구냐?"
 "영우(靈祐)입니다."
 "화로 속에 불이 있는가 헤쳐 보아라."
 스님은 헤쳐 보더니 말하였다.


{{20  위앙록
}} "불이 없습니다."
 백장스님은 몸소 일어나 깊이 헤쳐 조그마한 불씨를 찾아서 보여주며 말씀하셨다.
 "너는 이것이 없다고 말했지."
 스님은 여기서 깨닫고 절을 한 뒤에 자기의 견해를 말씀드리니 백장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잠시 나타난 갈림길일 뿐이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불성을 보고자 하면 시절인연을 관찰하라'고 하셨다. 때가 되면 미혹했다가 홀연히 깨달은 것 같고 잊었던 것을 홀연히 기억해낸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본래 자기 것이었지 남에게서 얻은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리라.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깨닫고 나면 깨닫기 전과 같고, 마음이 없으면 법도 없어진다'고 하셨다. 이것은 다만 허망하게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따위의 생각이 없어져 본래의 마음과 법이 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대가 이제 그렇게 되었으니 잘 간직하라."
 다음날 백장스님과 함께 산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는데, 백장스님이 스님에게 말씀하셨다.
 "불을 가져올 수 있느냐?"
 "가져올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 있느냐?"
 그러자 스님은 장작개비 하나를 집어들고 입으로 두 번 훅훅 불어서 백장스님께 건네주었다.
 "벌레 쫓는 막대기로군!"
*대혜 종고(大慧宗果:1089∼1163)스님은 이것을 이렇게 말하였

 


{{21  위산록/四家語錄
}}다.
 "백장스님이 이 말을 못했더라면 전좌(冶座:위산)에게 속을 뻔했다.
 
 그때 스님은 전좌(冶座:대중의 臥具나 음식 등 살림을 맡음) 소임을 맡고 있었다. 사마두타(司馬頭陀)가 여우 이야기〔野狐話頭〕를 가지고 스님에게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스님이 문짝을 세 번 흔드시니 사마두타가 말하였다.
 "꽤나 엉성한 사람이군."
 "불법(佛法)에 무슨 엉성하고 치밀함이 있습니까?"
 
 어느날은 사마두타가 호남(湖南)에서 오더니 백장스님에게 말하였다.
 "지난날 호남에 살 때 대위산(大山)이란 데에 올라가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산은 1,500명의 선지식을 모을 수 있는 도량입니다."
 "내가 가서 살 수 있겠는가?"
 "스님께서 거처할 곳이 아닙니다."
 "어째서 그런가?"
 "스님은 뼈로 된 사람〔骨人〕인데 그 산은 살로 된 산〔肉山〕입니다. 설사 스님께서 거처한다 하더라도 대중이 1,000명도 모이지 않을 겁니다."
 "나의 대중 가운데 그 산에 거처할 만한 인물이 있겠는가?"
 "두루 살펴보겠습니다."
{{22  위앙록
}} 당시에는 화림 선각(華林善覺)스님이 제1좌(第一座)였다. 백장스님이 시자에게 선각스님을 모셔오라 하시고는 물으셨다.
 "이 사람이 어떻겠는가?"
 사마두타는 기침을 한 번 하고 선각스님을 뒤로 몇 걸음 물러서게 한 뒤에 백장스님에게 말했다.
 "안되겠습니다."
 백장스님은 다시 스님(위산)을 불러오라 하셨다. 스님은 이 때에 전좌(冶座) 소임을 보고 있었는데 사마두타가 보자마자 말하였다.
 "이 사람이야말로 바로 위산(山)의 주인이 될 수 있겠습니다."
 백장스님은 이날밤 스님을 방으로 불러들여 법을 전하셨다.
 "내가 교화할 인연은 여기에 있으니, 위산의 훌륭한 경계에는 그대가 살면서 나의 종풍을 계승하여 후학을 널리 제도하라."
 화림스님이 이 소식을 듣고는 백장스님에게 말하였다.
 "외람되지만, 제가 대중의 우두머리에 있는데 영우스님이 어찌 그 산의 주지를 할 수 있는지요?"
 "만약 대중 앞에서 격식을 벗어난 말 한마디를 한다면 그대에게 주지를 시키리라."
 그리고는 물병을 가리키시며 물으셨다.
 "물병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그대는 뭐라고 부르겠느냐?"
 "말뚝이라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백장스님은 수긍치 않으시고 다시 스님에게 물었다. 그러자 {{위산록/四家語錄  23
}}{{위산록/四家語錄  23
}}스님은 물병을 발로 차서 거꾸러뜨리고는 바로 나가버렸다. 백장스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제1좌인 화림이 도리어 영우에게 졌구나!"
 백장스님은 드디어 스님을 위산으로 보냈다. 이 산은 원래 험준하여 인적이 전혀 없으므로 스님은 원숭이떼를 벗삼고 도토리와 밤을 주워 먹으며 살았다. 5, 6년을 지냈는데도 찾아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스님은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내가 본래 주지를 한 목적은 중생들을 제도하려는 것이었는데, 사람이 오고가질 않으니 나 자신에겐 좋지만 무엇을 구제하랴."
 그리하여 암자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였다. 스님이 산 입구에 이르자 뱀·호랑이·이리·표범이 이리저리 얽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스님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나의 길을 막지 말아라. 내가 이 산에 인연이 있다면 너희들은 각자 흩어지고, 만약 인연이 없다면 움직이지 말고 내가 여기를 떠나거든 너희들 마음대로 잡아먹도록 하라."
 말을 마치자 짐승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니 스님은 다시 암자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나서 채 일년도 못되어 나안(懶安)상좌가 몇몇 스님들과 함께 백장스님이 계시는 곳에서 이곳으로 와 스님을 도왔다. 나안스님은 말하였다.
 "제가 스님 회하에서 전좌 소임을 맡겠습니다. 그러다가 대중이 500명쯤 되면 소임을 그만두겠습니다."
 이로부터 산 아래에 사는 사람들이 점차 알게 되어, 여럿이 몰려와서는 절을 지어 주었다. 대장군〔連師〕 이경양(李景讓)거사가 황제께 아뢰어 동경사(同慶寺)라 이름지었고, 정승〔相國〕인 배휴(裴休)거사가 와서 현묘하고 그윽한 진리를 묻곤 하여 이때부터 천하의 선객들이 모여들었다. 법을 얻은 상수제자가 앙산 혜적(仰山慧寂:803∼887)스님이었으므로 세상에서 그들을 위앙종( 仰宗)이라 부르게 되었다.
 
{{25
}}2. 상  당

 

 

 


 1.
 스님께서 상당(上堂)하여 말씀하셨다.
 "도를 닦는 사람의 마음은 거짓없이 곧고 좋아하거나 싫어함이 없으며, 허망한 마음씨도 없어야 한다. 듣고 보는 모든 일상에 굽음이 없어야 하며, 그렇다고 눈을 감거나 귀를 막지도 말아야 한다. 다만 마음이 경계에 끄달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옛부터 모든 성인들은 단지 물든 세속사를 치유하는 측면에서 말씀하셨을 뿐이니, 허다한 나쁜 지견과 망상 습기가 없으면, 맑고 고요한 가을물처럼 청정할 것이다. 맑고 잔잔하여 아무 할일도 없고 막힐 것도 없으리니, 그런 사람을 도인(道人)이라 부르기도 하고 일 없는 사람〔無事人〕이라고도 한다."
 그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단박 깨친 사람도 더 닦을 것이 있읍니까?"
"참으로 근본을 체득한 이라면 닦는다느니 닦을 것이 없다느
{{26  위앙록
}}니 하는 것이 관점을 달리하는 말〔兩頭語〕임을 깨닫는 그 순간 스스로 안다. 지금 처음 발심한 사람이 인연 따라 한 생각에 본래 이치를 깨달았으나 비롯함이 없는 여러 겁의 습기를 당장 없애지는 못하므로 그것을 깨끗이 없애기 위해서는 현재의 업과 의식의 흐름을 다 없애야 하는데, 이것을 닦는다 하는 것이지 따로 닦게 하는 이치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법을 듣고 진리를 깨치는데 깊고 묘한 진리를 들으면 마음이 저절로 밝아져서 미혹한 경계에 머무르지 않게 된다. 그렇긴 하나 백천가지의 묘한 이치로 세상을 휩쓴다 할지라도 나아가 자리 잡고 옷을 풀고 앉아서 스스로 살 꾀를 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실제 진리의 경지에는 한 티끌도 받아들이지 않지만 만행을 닦는 가운데서는 한 법도 버리지 않는다. 만일 단도직입으로 깨달아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허망한 생각이 모두 녹아지면 참되고 항상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진리와 현실이 둘이 아닌 여여한 부처이다."
 
 2.
 등은봉(鄧隱峯)스님이 위산에 도착하자마자 큰방으로 들어가 상판(上板) 위에 의발(衣鉢)을 풀어 놓았다. 스님은 사숙(師叔)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먼저 예의를 갖추어 큰방으로 내려가 인사를 하려 했다. 은봉스님은 스님이 오는 것을 보자마자 벌렁 눕더니 자는 시늉을 하였다. 스님은 이를 보고 방장실로 그냥 되돌아가 버렸고 은봉스님도 떠나버렸다. 조금 있다가 스님께서 시자에게 물으셨다.
{{위산록/四家語錄  27
}} "사숙님은 아직 계시느냐?"
 "이미 떠나셨습니다."
 "가실 때에 무슨 말씀이 없으시더냐?"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말씀이 없었다고 하지 말라. 그 소리가 우뢰와 같았느니라."
 

 3.
 운암 담성(雲巖曇晟:782∼841)스님이 위산에 찾아왔을 때 스님께서 물으셨다.
 "소문을 듣자니 스님(운암)은 약산 유엄(藥山惟儼:745∼828)스님 회상에 살 때 사자를 데리고 놀았다고 하던데, 그런가?"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데리고 놀다가 그냥 둘 때도 있었는가?"
 "데리고 놀고 싶으면 데리고 놀고, 그냥 두고 싶으면 그냥 두었습니다."
 "그냥 둘 때는 사자가 어느 곳에 있던가?"
 "그냥 두었지요. 그냥 두었습니다."
 
* 법창 의우(法昌倚遇:1005∼1081)스님은 말하였다.
 "훌륭한 사자였으나 머리만 있었지 꼬리는 없었다. 내가 당시에 위산스님이 `그냥 둘 때에는 사자가 어디에 있던가?'라고 묻는 것을 보았더라면 땅에 웅크린 금빛사자를 내보내 위산스님이 몸을

{{28  위앙록
}}숨길 곳이 없게 하였으리라."
 
 4.
 스님께서 운암스님에게 물으셨다.
 "보리(菩提)는 어디에 자리하는가?"
 "무위(無爲)에 자리합니다."
 운암스님이 똑같이 묻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모든 법이 빈 것에 자리한다."
 또 도오 원지(道吾圓智:769∼835)스님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앉으면 앉는 데 있고 누우면 눕는 데 있소. 그런데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는 사람이 있으니 무엇이겠소? 빨리 말하시오. 빨리 말해."
 그대는 여기서 그만두었다.
 
 5.
 스님께서 운암스님에게 물으셨다.
 "스님은 약산 유엄스님 회상에서 오랫동안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런가?"
 "그렇습니다."
 "어떤 것이 약산스님의 거룩한 모습인가?"
 "열반에 든 뒤에도 있습니다."
 "열반의 뒤에 있는 것이 무엇인데?"
 "물에도 젖지 않습니다."
{{위산록/四家語錄  29
}} 운암스님이 스님에게 똑같이 물었다.
 "백장스님의 거룩한 모습은 어떻습니까?"
 "당당하고 밝다. 소리가 생기기 전이라 소리가 아니며 물질이 끝난 뒤라 물질도 아니니, 마치 무쇠소 등에 붙은 모기가 침을 꽂을 곳이 없는 것과 같다."
 
 6.
 위산스님이 도오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딜 갔다 오는 길이오?"
 "환자를 보살피고 오는 길이요."
 "몇 사람이나 병이 들었읍니까?"
 "병든 사람도 있고, 병들지 않은 사람도 있었소."
 "병들지 않은 사람은 지두타(智頭陀)가 아닙니까?"
 "병이 들었거나 병들지 않았거나 양쪽 다 `그 일'과는 관계가 없으니, 빨리 말하시오. 빨리 말해."
 "말을 한다 해도 그것과는 관계없소."
 
 7.
 덕산 선감(德山宣鑑:780∼865)스님이 찾아와서 좌복을 끼고 법당에 올라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락가락하더니 방장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계십니까, 계십니까!"
 스님께서는 앉은 채로 뒤돌아보시지도 않자 덕산스님은 말하였다.
{{30  위앙록
}} "아무도 없구나! 아무도 없어!"
 그리고는 그냥 나가려고 했다.
 
* 설두 중현(雪重顯)스님이 착어(着語:本則 끝에 평을 붙여 자기의 宗眼을 표시하는 짧은 싯구)하였다. "속셈을 간파해 버렸군"

 그러다 문앞에 와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그렇긴 해도 경솔해서는 안되지" 하고는 이윽고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들어가 인사를 하려 했다. 문지방을 들어서자마자 좌구(坐具)를 들고 "스님!"하니 스님이 불자(拂子)를 잡으려는데, 덕산스님은 별안간 "할"하고는 소맷자락을 날리며 그냥 나가버렸다.
 
* 설두스님은 "간파해 버렸군"하고 착어하였다.
 
 그날 스님께서는 느지막하게 수좌(首座)에게 물으셨다.
 "오늘 새로 찾아온 사람이 아직 있느냐?"
 "그때 법당을 등지고 짚신을 신고 나가버렸습니다."
 "이 사람은 뒷날 높은 산봉우리에 초암(草庵)을 짓고 앉아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을 꾸짖고 호령하게 될 것이다."
 
* 설두스님은 "설상가상이군"하였고, 오조 사계(五祖師戒)스님은 "덕산스님은 남의 마음을 훔치는 도둑놈 같고, 위산스님도 도적이 간 뒤에 활을 당겼다" 하였다.
 

{{위산록/四家語錄  31
}} 8.
 석상(石霜)스님이 위산에 이르러 미두(米頭:冶座 및에서 쌀을 관장하는 직책) 소임을 맡게 되었다. 하루는 키로 쌀을 까부르고 있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시주물(施主物)을 흘려버리지 말게."
 "흘려버리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땅에서 쌀 한 톨을 주어들고는 말씀하셨다.
 "그대는 흘려버리지 않는다고 말하고서 이건 뭔가?"
 석상스님이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이 한 톨의 곡식을 가볍게 여기지 말게. 모든 곡식알이 다 이 한 알에서 나온다네."
 "모든 곡식알이 이 한 알에서 나온다면, 이 한 알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스님께서는 크게 껄껄 웃으시며 방장실로 돌아갔다.
 

 9.
 협산 선회(夾山善會:805∼881)스님이 위산에 머무르면서 전좌(冶座) 소임을 맡아 보았다. 스님께서 협산스님에게 물었다.
 "오늘은 무슨 나물을 먹지?"
 "작년이나 올해나 똑같은 봄입니다."
 "공부 잘 하는구나."
 "용이 봉황의 둥우리에서 잠을 잡니다."
 
{{32 위앙록
}} 10.
 앙산 혜적(仰山慧寂:803∼887)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위산스님은 등롱(燈籠:법당 앞에 세워둔 장엄구의 일종)을 가리키시면서 말씀하셨다.
 "등롱이 아주 좋구먼."
 "그저 `이것인' 것만은 아니지 않읍니까?"
 "그 `이것'이라는 게 무엇인가?"
 "아주 좋은 등롱 말입니다."
 "과연 모르는구먼!"
 
 11.
 어느날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허다한 사람들이 대기(大機)만을 얻었을 뿐, 대용(大用)을 얻지는 못했다."
 앙산스님이 이 말을 산 아래 암주(庵主)에게 이야기하고 이어서 물었다.
 "스님께서 이처럼 말씀하신 뜻이 무엇이겠읍니까?"
 "그럼 위산스님이 하셨던 대로 나에게 말해 보십시오."
 앙산스님이 다시 말하려 하자 암주는 느닷없이 앙산스님을 걷어차서 쓰러뜨렸다. 앙산스님이 되돌아와 스님에게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스님께서는 `껄껄'하고 크게 웃으셨다.
 

{{위산록/四家語錄  33
}} 12.
 스님께서 차잎을 따시다가 앙산스님에게 말씀하셨다.
 "종일토록 차잎을 따는데 그대의 소리만 들릴 뿐 그대의 모습은 보이질 않으니 본래 모습을 드러내라."
 앙산스님이 차나무를 흔들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대는 작용만을 얻었을 뿐 본체는 얻지 못하였군."
 "그렇다면 스님께선 어찌 하시겠읍니까?"
 스님께서 잠자코 한참을 있자 앙산스님은 말하였다.
 "스님께선 본체만을 얻었을 뿐 작용은 얻질 못하셨습니다."
 "네놈에게 몽둥이 30대를 때려야겠구나."
 "스님의 방망이는 제가 맞습니다만 저의 방망이는 누가 맞습니까?"
 "네놈에게 몽둥이 30대를 때려야겠구나."
 
* 수산 성념(首山省念:926∼993)스님은 말하였다.
 "종사(宗師)라면 모름지기 법을 구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갖추어야만 한다. 당시에 위산스님이 아니었다면 울타리나 벽을 더듬는 꼴을 보았을 것이다."

 낭야 혜각(慧覺)스님은 말하였다.
 "5경(五更:새벽 3∼5시)이 되어 일찍 일어난 줄 알았더니 벌써 밤에 떠난 사람이 있었군."
 또 말하였다.
 "위산스님이 아니었더라면, 하마터면 모두 죽을 뻔했을 것이다."

{{34 위앙록
}} 백운 수단(百雲守端:1025∼1072)스님은 말하였다.
 "부자가 서로 만나 의기(意氣)가 투합하고 안팎으로 쪼아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 동시에 기봉이 마주쳤다. 그렇긴 해도 필경 어떻게 말해야만 체용(體用)이 모두 완전할 수 있을까?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방망이 30대를 때린 것은 자식을 기를 인연이었다 하겠다."
 장산 근(蔣山懃)스님이 말하였다.
 "장공(張公)이 잠깐 이공(李公)의 친구되어 이공에게 벌주(罰酒) 한 잔 대접하려다가 도리어 이공에게 벌주 한 잔 당했으니 이야말로 솜씨 중에 솜씨로구나."
 옥천 종련(玉泉宗璉)스님은 말하였다.
 "설사 체용이 둘 다 완전하다 해도 애초부터 빗나가 버렸는데야 어찌하랴. 빗나가버린 것은 우선 그만두고라도 그에게 30대의 방망이를 때린 것은 또 어떠한가? 석 잔 술로 도련님의 얼굴을 화장하고, 한 송이 꽃을 미인의 머리에 꽂는다네."

 13.
 스님께서 막 앉으려 하시는데 앙산스님이 들어왔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혜적(慧寂)아! 5음(五陰)의 경계에 들어가지 말고서 얼른 한마디 해 보라."
 "저는 아직 신심도 확고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믿음을 이룩하지 못했는가, 아니면 믿지 않음을 이룩하지 못했는가?"


{{위산록/四家語錄  35
}} "다만 혜적일 뿐 다시 누구를 믿겠읍니까?"
 "그렇다면 정성성문(定性聲聞:부처될 가망이 없는 고정적인 성문)이로구나."
 "혜적은 부처님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14.
 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 『열반경』 40권에서 어느 정도가 부처님 말씀이며 어느 정도가 마군의 말이겠느냐?"
 "모조리 마군의 말입니다."
 "앞으로는 그대를 어찌해 볼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앙산스님이 물었다.
 "혜적의 지난 한 때의 처신〔行履:무종의 폐불로 강제환속당했던 일〕은 어찌 됩니까?"
 "그대의 바른 안목이 중요할 뿐, 그때 그 일은 말하지 않겠다."
 
 15.
 앙산스님이 빨래를 밟다가 불쑥 스님께 여쭈었다.
 "바로 이러할 때에 스님께서는 어찌하시겠읍니까?"
 "바로 이러할 때에는 어찌할 수가 없구나."
 "스님은 본체는 있어도 작용이 없습니다."
 스님께서는 말 없이 잠자코 계시다가 불쑥 물으셨다.

{{36  위앙록
}} "그대는 이러할 때 어찌하겠느냐?"
 "바로 이러할 때 스님께서는 이것을 보셨읍니까?"
 "그대는 작용은 있어도 본체는 없구나."
 스님께서 그 뒤에 갑자기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그대가 지난봄에 한 말은 완전하질 못했으니 지금 다시 말해 보아라."
 "바로 이런 때에 간절한 호소는 금물입니다."
 "감옥살이하는 동안에 꾀가 제법 늘었구나."
 
 16.
 스님께서 물병을 앙산스님에게 건네주려다가 앙산스님이 받으려 하자 손을 얼른 웅크리면서 말씀하셨다.
 "무엇이냐?"
 "스님께서는 무엇이 보이십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나에게서 받으려 했는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인의(仁義)의 도리에서 보건대, 스님의 물병을 받아 물을 떠다 드리는 것이 제자의 도리이겠습니다."
 스님은 그제서야 물병을 앙산스님에게 건네 주셨다.
 
 17.
 스님이 앙산스님과 함께 가다가 잣나무를 가리키시면서 말씀하셨다.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잣나무입니다."
{{위산록/四家語錄  37
}} 스님은 다시 밭에서 김매는 농부에게 물었는데 농부 역시 "잣나무입니다"하자 "밭에서 김매는 농부도 뒷날 5백명 정도의 대중은 거느리겠구나"하셨다.
 
* 위산 철(山喆)스님은 말하였다.
 "나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차라리 `김매는 어르신네여, 나는 그대만 못하다'라고 하였으리라. 말해 보라. 대원(大圓:위산스님의 시호)이 옳은지 내가 옳은지를. 만일 어떤 사람이 분별할 수 있다면 그대가 법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을 갖추었다고 인정하겠지만, 만약 분별하지 못한다면 불법이 치연하게 생멸하리라."
 신정 홍인(神鼎洪:?∼901)스님은 말하였다.
 "의도가 김매는 데 있었겠느냐? 앙산의 경계에 있었겠느냐? 아니면 모두 아닌가? 여러 상좌(上座)들이여, 일체 법이 분분하나 다시는 일삼을 필요가 없다. 그들 사제간의 대화는 같은 길을 가는 자만이 알 것이다."
 
 18.
 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밭에서 돌아옵니다."
 "벼는 잘 베었느냐?"
 앙산스님이 벼 베는 시늉을 하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대가 가지고 온 벼는 푸르던가 누렇던가, 푸르지도 누렇지도 않던가?"
 "스님 등 뒤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38 위앙록
}} "보았는가?"
 앙산스님은 벼이삭을 꺼내 들면서 말하였다.
 "스님께서 이것을 물으셨겠읍니까?"
 "거위왕이 우유만을 가리는 것과 같구나."
 
 19.
 위산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날씨가 추운가, 사람이 추운가?"
 "모든 사람들이 그 속에 있습니다."
 "어찌하여 바로 말하지 않느냐?"
 "이제까지 굽어 있지 않았는데 스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흐름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20.
 스님께서 상당(上堂)하여 말씀하셨다.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해마다 있는 일이다. 해 그림자가 옮기며 세월이 가는 일은 어떠한가?"
 앙산스님이 앞으로 나아가 차수(叉手)하고 서자 스님께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가 이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향엄(香嚴:?∼898)스님이 말하였다.
 "저는 이 말에 조금이나마 대답할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 바짝 앞으로 나아가 묻자 향엄스님도 역시 앞으로 {{위산록/四家語錄  39
}}나아가 차수하고 서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운이 좋아서 혜적이가 모르는 것을 만났구나!"
 
 21.
 스님께서 앉아계신데 앙산스님이 방장실 앞을 지나가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백장선사(先師)께서 보셨더라면 그대는 모름지기 뼈아픈 방망이를 맞아야 했으리라."
 "지금은 어떻습니까?"
 "입 닥쳐라!"
 "이 은혜는 보답하기 어렵겠습니다."
 "그대가 재주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이가 들었을 뿐이다."
 "오늘은 백장스승을 직접 뵙고 왔습니다."
 "어디에서 보았느냐?"
 "보았다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것도 아닙니다."
 "진짜 작가(作家:선지식)로다."
 
 22.
 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지금의 일은 우선 그만두고, 옛날의 일은 어떠한가?"
 앙산스님이 차수를 하고 앞으로 가까이 가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40 위앙록
}} "그래도 이것은 지금의 일이네. 옛날의 일은 어떤가?"
 앙산스님이 뒤로 물러가 서자 스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이겼느냐 내가 너를 이겼느냐?"
 그러자 앙산스님은 절을 올렸다.
 
* 장산 근(蔣山懃)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이 나아가고 물러나며 옛날과 지금을 잘 드러내긴 하였으나 호떡의 꿀은 위산이 빨아먹었는데야 어찌하랴. 모래를 짜서 기름을 찾았다 하리라. 그렇기는 하나 말해 보라. 앙산이 차수했던 의도가 무엇인지를. 만약 이것을 알 수 있다면 행각하는 일을 끝내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라면 내가 여러분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가 나를 저버린 것이다."
 
 23.
 앙산스님과 향엄스님이 스님을 모시고 있는데 스님께서 손을 들며 말씀하셨다.
 "요즈음 이같은 자는 적고, 이같지 않은 자는 많구나."
 향엄스님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 서자 앙산스님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서 서니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인연은 30년 뒤에 가서 황금을 땅에 던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앙산스님이 "역시 스님께서 법을 펴셔야 하겠습니다" 하였고, 향엄스님은 "지금도 적지는 않군요" 하였는데, 스님은 "입 닥쳐라!" 하셨다.
 
{{위산록/四家語錄  41
}}* 남당 원정(南堂元靜:1065∼1135)스님은 말하였다.
 코끼리왕은 기지개를 켜고
 사자는 포효하네
 땅에 웅크리고 허공에 도사려
 별을 옮겨 북두와 바꾸었네
 앉아서 혀끝을 끊으니
 개 같은 입 닥쳐라
 한번 땅에 던져 황금소리 내니
 구비구비한 황하는 바닥까지 맑았어라.
 
 24.
 스님께서 앉아 있는데 앙산스님이 들어왔다. 스님이 양손을 맞대어 들어보이자 앙산스님은 여인처럼 절을 하니 스님께서는 "그렇네. 그래" 하셨다.
 
 25.
 스님께서 방장실 안에 앉아계신데 앙산스님이 들어오니 이렇게 물으셨다.
 "혜적아, 요즈음 종문(宗門)의 법통계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많은 사람이 이 일을 의심합니다."
 "그대는 어떤가?"
 "저는 그저 피곤하면 잠을 자고, 기운 있으면 좌선을 합니다.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정도 되기가 이렵지."
 {{42  위앙록
}}"제 생각은 그럴 뿐이니 한 마디도 할 수 없습니다."
 "그대 혼자로는 말할 수 없지."
 "예로부터 모든 성인이 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대의 이같은 대꾸를 비웃을 것이다."
 "비웃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제가 그와 동참하겠습니다."
 "생사의 굴레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어떠한가?"
 앙산스님이 선상(禪滅)을 한 바퀴 돌자 스님은 "고금을 깨 부숴버렸군" 하셨다.
 

* 장산 근스님은 말하였다.
 "거문고를 튕겨 이별을 노래하고, 낙엽이 지니 가을인 줄 알겠더라. 예나 지금이나 척척 들어맞는다.
 조도(鳥道)와 현로(玄路)*는 이들 스승과 제자가 직접 다녔다 할 만하겠지만 만약 가시덤불 속에 있다면 아직 깨닫지 못했다 하리라. 그 증거로써 앙산이 선상을 한 바퀴 돌자 위산이 `고금을 깨 부숴버렸군'이라 말한 것을 들 수 있다. 눈 밝은 납승(衲僧)이었다면 조금도 속이지 못했을 것이다."
 
 26.
 앙산스님과 향엄스님이 모시고 있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위산록/四家語錄  43
}} "과거·현재·미래에 부처마다 같은 길이며 사람마다 모두 해탈의 길을 얻었다."
 그러자 앙산스님이 "무엇이 사람마다 얻은 해탈의 길입니까?"하니 스님께서 향엄스님을 되돌아보며 "혜적이 지금 바로 묻고 있는데, 왜 그것을 말해주지 않느냐?"하셨다.
 향엄스님이 "과거·현재·미래를 말하라면 저는 대답할 수 있습니다" 하니 스님이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려는가?"하고 묻자 향엄스님은 "안녕히 계십시오"하고는 바로 나가버렸다. 스님은 다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지한이 이처럼 대꾸했는데 혜적은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어찌하려는가?"
 앙산스님도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나가버리자, 스님은 `껄껄' 하고 크게 웃으시며 "물과 우유가 섞이 듯하는군" 하셨다.
 
 27.
 스님께서 하루는 한 발로 서 계시면서 앙산스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매일 이것에 실려 있지만 이것을 철저히 알지 못하겠다."
 앙산스님은 말하였다.
 "당시 급고독원(給孤獨園)에서도 이와 다름이 없었을 겁니다."
 "한마디 더 해 보거라."
{{44  위앙록
}} "추울 때에 그것에 버선을 신긴다고 말해도 도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실려 있지 않았는데 그대는 벌써 철저히 알아버렸네."
 "그렇다면 어찌 다시 대답하라 하십니까?"
 "말해 보게나."
 "정말 그렇습니다."
 "옳지, 옳지."
 
 28.
 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생(生)·주(住)·이(異)·멸(滅)을 그대는 알겠는가?"
 "한 생각이 일어날 때에도 생·주·이·멸이 전혀 없습니다."
 "그대는 어찌 법을 버릴 수 있는가?"
 "스님께서 조금 전에 무엇을 질문하셨습니까?"
 "생·주·이·멸이라고 말했지."
 "도리어 스님께서 법을 버리셨군요."
 
 29.
 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오묘하고 청정하고 맑은 마음〔妙淨明心〕을 그대는 무어라고 생각하는가?"
 "산하대지와 일월성신입니다."
{{위산록/四家語錄  45
}} "그대는 겨우 그것만 알았느냐?"
 "스님께서는 조금 전에 무얼 물으셨읍니까?"
 "오묘하고 청정하고 밝은 마음에 대해 물었네."
 "겨우 스님께서는 그것만 알았읍니까?"
 "그렇지. 그래."
 
 30.
 석상(石霜)스님의 회상에 있던 두 선객이 찾아와서는 말하기를 "여기에는 선(禪)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군" 하였다. 나중에 대중 운력으로 땔감을 운반하다가 앙산스님은 두 선객이 쉬는 것을 보고서 장작개비 하나를 들고는 물었다.
 "자, 말할 수 있겠소?"
 둘 다 대꾸가 없자 앙산스님은 말하였다.
 "선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그리고는 스님께 돌아와서 말씀드렸다.
 "오늘 두 선객이 저에게 속셈을 간파당하였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했길래 그대에게 간파당하였는가?"
 앙산스님이 앞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혜적은 다시 나에게 속셈을 간파당하였군."
 
* 운거 청석(雲居淸錫)스님은 말하였다.

{{44  위앙록 
}} "어디가 위산이 앙산을 간파해 버린 곳이냐?"
 
 31.
 스님이 졸고 앉아계신데 앙산스님이 문안을 드리자 스님께선 돌려 앉으시더니 벽을 향했다.
 "스님, 어찌 그러십니까?"
하고 묻자 스님이 일어나시더니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전에 꿈을 꾸었는데, 그대가 해몽해 주게나."
 앙산스님이 물 한 대야를 가지고 스님의 얼굴을 씻겨드렸다. 조금 있다가 향엄스님이 와서 문안을 드리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전에 꿈을 꾸었는데 혜적이 나를 위해서 해몽을 해주었다네. 그러니 그대도 해몽을 해보게."
 향엄스님이 차 한 잔을 다려다 바치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두 사람의 견해가 지혜제일의 사리불보다 더 훌륭하구나."
 
* 장산 근스님은 말하였다.
 꿈 속에서 꿈 이야기를 하니
 위산은 참으로 인정할 만하다
 묘용(妙用)과 신통(神通)은
 모름지기 두 사람에게 돌리게나
 차를 올리고 세숫물 떠다드려
 고금에 빛나도다
 늙어져서 마음 외로우니
 아이들을 가련하게 아끼네
{{위산록/四家語錄  47
}} 납승의 문하에서
 한 사람은 문 밖에 있고
 한 사람은 문 안에 있는데
 다시 한 사람 있어
 이 넓은 세상에도 감출 수 없고
 불안(佛眼)으로도 엿보지 못하네"
 남당 원정스님은 말하였다.
 무명초(無明草)를 헤쳐 본지풍광(本地風光) 바라보고
 고봉(孤峯)에 홀로 잠자며
 줄 없는 거문고 뜯고
 남이 없는〔無生〕 곡조를 노래하네
 위산, 앙산, 향엄이여!
 마치 솥의 세 발과 같아라
 중생을 만나 털끝만한 힘도 쓰지 않고
 천백억 세계에 마음대로 분신(¿身)하네.
 
 32.
 한 스님이 물었다.
 "달마스님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스님은 다만 불자(拂子)를 일으켜 세우셨다. 이 일이 있은 뒤 그 스님은 상시(常侍) 벼슬을 하는 왕경초(王敬初)거사를 만났는데 왕거사는 이렇게 물었다.
 "위산스님께서는 요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그 스님이 지난번에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더니 왕거사가 또 말하였다.

{{48  위앙록
}} "그 쪽 문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물건〔色〕을 통해 마음을 밝히고 사물을 가지고 이치를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닐 것입니다. 스님은 속히 돌아가야 좋을 겁니다. 제가 감히 편지 한 장을 드릴 터이니 위산스님께 전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편지를 받아들고 되돌아가서 스님께 올렸다. 편지를 열어 보았더니, 일원상(一圓相)이 그려져 있고, 그 안에 날일자〔日〕가 써 있었는데 스님은 말씀하셨다.
 "천리 밖에 나의 심중을 헤아리는 자가 있을 줄이야 뉘라서 알았으랴."
 앙산스님이 뫼시고 있다가 그것에 대해 말하였다.
 "비록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속인일 뿐입니다."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앙산스님이 즉시 일원상을 그리고 그 가운데 날일자〔日〕를 썼다가 발로 쓱쓱 문질러 버렸다. 그러자 스님은 크게 웃으셨다.
 
 33.
 스님이 앉아계신데 앙산스님이 여쭈었다.
 "스님께서 돌아가신 뒤에 선사(先師)의 법도를 묻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한 끼니는 죽, 한 끼니는 밥을 먹었다고 하게."
 "앞에 있는 그 사람이 그것을 긍정하지 않는다면 어찌합니까?"
{{위산록/四家語錄  49
}} "그대야말로 본색종장(本色宗翌)이로군."
 앙산스님이 곧바로 절을 올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이 소식을 잘못 들먹거리지 말게."
 
 34.
 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종일토록 그대와 대화해서 무슨 일을 했을까?"
 앙산스님이 공중에 한 획을 그리자, 스님께서는 "내가 아니었더라면 끝내 그대에게 속았을 걸세" 하셨다.
 
 35.
 앙산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수많은 경계가 한꺼번에 닥치면 어찌합니까?"
 "푸른 것은 누런 것이 아니고, 긴 것은 짧은 것이 아니다. 모든 법은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므로 나의 일에는 관계하질 않는다."
 앙산스님은 스님께 절을 올렸다.
 
 36.
 장을 담그면서 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여기에 어느 정도의 소금물을 넣어야 할까?"
 "저는 모르겠으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알겠는데."

{{50  위앙록
}} "소금물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모르겠습니다."
 "네가 모른다면 나도 답변하지 않겠다."
 그날 저녁에 스님께서 다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오늘의 인연을 그대는 어떻게 간직하려는가?"
 "묻는대로 대답하겠습니다."
 "지금 그대에게 묻는다. 어쩔텐가?"
 "귀는 어둡고 눈은 침침하여 듣고 보는 것이 분명하질 못합니다."
 "그 누가 문답을 하더라도 그대의 이 말보다 뛰어나지는 못하리라."
 앙산스님이 절을 올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혜적아, 오늘은 아침 저녁으로 잃은 것이 적지 않구나."
 
 37.
 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홀로 회광반조(廻光返照)하라. 다른 사람은 그대가 깨달은 깊이를 모르니, 그대는 실제로 이해한 바를 내게 보여다오."
 "제가 보건대 이 자리에는 부처를 이루었다〔圓位〕할 것도 없으며 한 물건, 한 깨달음도 스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부처를 이루었다 할 것도 없는 자리는 원래 그대가 알음알이를 내는 자리로서 마음〔心〕과 경계〔境〕를 아직 여의치 못한 것이다."
 "부처도 없는데 무슨 법이 있으며, 무엇으로 경계를 짓습니{{위산록/四家語錄  51
}}{{
}}{{위산록/四家語錄  51
}}까?"
 "조금 전에 그대가 그런 알음알이를 냈었지?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이다 경계다 하는 것이 모두 있어 주관〔我〕과 객관〔我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라. 원래 그대에겐 알음알이가 있었는데 나에게 내놓을 알음알이가 없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느냐? 그대의 신위(信位){{* 신위(信位) : 신앙의 단계
}}는 환히 나타났다고 인정하겠지만, 인위(人位){{* 인위(人位) : 믿음의 자취 마저도 사라지고 본래면복이 그대로 드러난 개    성의 단계
}}는 숨어 있느니라."
 
 38.
 스님께서 앙산스님이 오는 것을 보시고는 곧 손가락으로 땅에다 한 획을 긋자, 앙산스님은 손으로 목 아래에 한 획 긋고, 다시 자기 귀를 잡아 서너번 털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리셨다.
 
 39.
 스님께서 하루는 향엄스님과 앙산스님이 떡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그때도 백장스님께서 이 도리를 직접 체득하셨다네."

{{52 위앙록
}} 앙산스님과 향엄스님이 서로 돌아보며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이 말씀에 대답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이 대답할 수 있지."
 앙산스님이 말하였다.
 "누굽니까?"
 스님께서는 물빛소〔水牛〕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말하라, 말해 보아라."
 그러자 앙산스님은 풀 한 묶음을 가져오고 향엄스님은 물 한 통을 가져와 물빛소 앞에 놓았다. 물빛소가 먹으려 하자 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렇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
 두 스님이 함께 절을 올리자 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떤 때는 밝기도 하고, 어떤 때는 어둡기도 하다."
 
 40.
 스님께서 하루는 제자들에게 정어(呈語){{* 정어(呈語) : 말을 바친다는 뜻으로 선사들이 자신이 수행하는 상태를 스    승께 언어로써 말씀드려 감정 받는 것
}}*를 해보라고 하시면서 "소리나 물질〔聲色〕 밖에서 나와 만나보자"고 하셨다.
 이때에 유주(幽州)의 감홍(鑑弘)상좌가 정어하기를, "말씀 올리는 것이야 사양치 않지만 눈 없는 사람이 누굽니까?" 하자 스님께서는 긍정하지 않으셨다.
 앙산스님은 세 차례 말씀을 올렸는데〔呈語〕, 첫째는 "본다 {{위산록/四家語錄  53
}}해도 소리나 물질〔聲色〕에 걸리고 보지 않는다 해도 걸립니다" 하자, 스님께서는 "미세하기는 새털 끝 같고 차가웁기는 한겨울의 서릿발과 같다"고 하셨다. 두번째는 "성색의 밖에서 누가 만나려고 합니까?"라고 하자, 스님께서는 "방외(方外:세속을 떠나 도를 닦는)의 도리에 막힌 성문(聲聞)일 뿐이다" 하셨으며, 세번째는 "두 거울이 서로 비출 때 그 가운데 아무런 물상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스님께서는 "이 말이 맞다" 하셨다.
 앙산스님이 다시 여쭈었다.
 "스님께서는 백장 노스님의 처소에서 어떻게 정어하셨읍니까?"
 "나는 백장스님의 처소에서 정어(呈語)하기를 `마치 수많은 밝은 거울이 상(像)을 비추면서 빛이 서로를 비추는 것처럼, 진진찰찰(塵塵刹刹)이 서로를 조금도 의지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앙산스님은 절을 올렸다.
 
 41.
 스님께서 하루는 향엄스님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백장스님의 처소에 살면서, 하나를 물으면 열을 대답하고 열을 물으면 백을 대답했다고 하던데 이는 그대가 총명하고 영리하여 이해력이 뛰어났기 때문일 줄 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생사의 근본이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 그대의 본래면목에 대해 한마디 말해 보아라."
 향엄스님은 이 질문을 받고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방으로 되{{54  위앙록
}}돌아와 평소에 보았던 모든 책을 뒤져가며 적절한 대답을 찾으려고 애를 써 보았으나 끝내는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탄식하며 말하였다.
 "그림 속의 떡은 주린 배를 채워주지 못한다."
 그런 뒤로 향엄스님은 여러번 스님께 가르쳐 주시기를 청하였으나 그럴 때마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만일 그대에게 말해준다면 그대는 뒷날 나를 욕할 것이네. 무엇이든 내가 설명하는 것은 내 일일 뿐 결코 그대의 수행과는 관계가 없느니라."
 향엄스님은 이윽고 평소에 보았던 책들을 태워버리면서 말하였다.
 "금생에서는 더이상 불법을 배우지 않고 이제부터는 그저 멀리 떠돌아다니면서 얻어 먹는 밥중노릇이나 하면서 이 몸둥이나 좀 편하게 지내리라."
 이리하여 눈물을 흘리며 스님을 하직하였다. 곧바로 남양(南陽) 지방을 지나다가 혜충국사(慧忠國師)의 탑을 참배하고는 마침내 그곳에서 쉬게 되었다.
 하루는 잡초와 나무를 베다가 우연히 기왓장 한 조각을 집어 던졌는데 그것이 대나무에 "딱"부딪치는 소리를 듣고는 단박에 깨닫게 되었다. 향엄스님은 급히 거처로 돌아와 목욕 분향하고 멀리 계시는 스님(위산)께 절을 올리고는 말하였다.
 "스님의 큰 자비여! 부모의 은혜보다 더 크십니다. 만일 그때 저에게 말로 설명해 주셨더라면 어찌 오늘의 이 깨달음이

{{위산록/四家語錄  55
}}있을 수 있겠읍니까!"
 이에 게송을 읊었다.
딱 소리에 알던 바를 잊으니
다시는 닦을 필요 없게 되었네
덩실덩실 옛길을 넘나드니
초췌한 처지에 빠질 리 없어라
곳곳에 자취를 남기지 않고
빛과 소리를 벗어난 몸짓이니
제방의 도를 아는 이들은
모두가 상상기(上上機)라 하더라.
一擊忘所知 更不假修時
動容揚古路 不墮 然機
處處無 迹 聲色外威儀
諸方達道者 咸言上上機
 스님께서 들으시고는 앙산스님에게 "향엄이 확철대오했구나" 하시자 앙산스님은 "이 게송은 알음알이로 따져서 쓴 것입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볼 터이니 기다리십시오" 하였다.
 앙산스님이 그 후 향엄스님을 보고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사제(師弟)가 깨달은 일을 칭찬하셨는데 그 일을 한번 말해보게."
 향엄스님이 일전에 읊었던 게송을 다시 들먹이자 앙산스님은 말하였다.
 "이는 지난번 일을 기억으로 말하는 것이네. 정말로 깨쳤다면 달리 설명해보게."
{{56  위앙록
}} 향엄스님이 또 게송을 지어 말하였다.
지난해 가난은 가난이 아니고
금년의 가난이 진짜 가난이네
작년의 가난은 바늘 꽂을 땅이라도 있더니
금년의 가난은 바늘마저 없구나
去年貧未是貧 今年貧始是貧
去年貧猶有¿錐之地 今年貧錐也無
 앙산스님은 말하였다.
 "여래선(如來禪)은 사제가 알았다고 인정하겠네만 조사선(祖師禪)은 꿈에서도 보지 못하고 있군."
 향엄스님은 다시 게송을 지어 말하였다.
나에게 한 기틀 있어
눈 깜박하는 사이에 그것을 보네
이 이치를 깨치지 못하는 자에게
더이상 사미(沙邇)라 부르지 말지어다!
我有一機 瞬目視伊
若人不會 別喚沙邇

 앙산스님은 이에 스님께 보고드리고 말하였다.
 "반갑게도 지한(智閑)사제가 조사선을 알았습니다."
 
현각(玄覺)스님은 말하였다.
 "말해보라! 여래선과 조사선이 나뉠 수 있는지 없는지."
 장경 혜릉(長慶慧稜:854∼932)스님은 말하였다.
{{위산록/四家語錄  57
}} "한꺼번에 눌러버렸다."

 운거 청석(雲居淸錫)스님은 따져 물었다.
 "대중 가운데서 여래선은 얕고 조사선은 깊다고들 생각하는데, 향엄의 경우 당시에 어째서 `무엇이 조사선입니까?'하고 묻질 않았을까? 이 한마디 질문을 하였더라면 어느 곳에 조사선이 있으랴?"
 낭야 혜각(慧覺)스님은 말하였다.
 "무제(武帝)는 신선이 되고자 했으나 신선이 되지 못하였고, 왕교(王橋)는 단정히 앉아서 하늘로 올랐다."
 위산 철(山喆)스님은 말하였다.
"향엄스님은 위로는 한 조각의 기와도 없고, 아래로는 꽂을 바늘도 없이 적나라하여 손을 댈 곳이 없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앙산스님이 아니었더라면 그를 놓칠 뻔했다. 어째서인가? 차디찬 눈과 서리가 없으면 송백(松栢)의 지조를 어찌 알겠는가!"
 대혜 종고(大慧宗)스님은 말하였다.
 "위산스님이 만년에 훌륭하였는데, 즉 한 장대의 육고기 꼭둑각시를 가르쳤던 것이다. 이것이 정말 훌륭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정말 훌륭한 점일까? 얼굴마다 서로 보며 손발을 움직이나 말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임을 어찌 알랴!"

 42.
 스님께서 상당(上堂)하여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대기(大機)를 얻었을 뿐 대용(大用)을 얻지는 못하였다."
이때에 구봉 도건(九峯道虔)스님이 대중 가운데서 쓱 빠져나갔다. 스님께서 그를 불렀으나 다시는 돌아보질 않았으므로 {{58 위앙록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법기(法器)가 될만하군."
 하루는 스님을 하직하며 구봉스님이 말하였다.
 "저는 스님을 이별하고 떠나갑니다만 천리 밖에서도 좌우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안색이 변하며 말씀하셨다.
 "잘 해보게."
 
 43.
 영운 지근(靈雲圍勤)스님이 처음 위산에 있으면서 복숭아꽃을 보고는 도를 깨닫고 게송을 읊었다.
검(劍)을 찾기 30년 세월
몇 번이나 낙엽지고 싹이 돋았나
복숭아꽃 한번 본 뒤로는
지금까지 다시는 의심치 않네.

三十年來尋劍客 幾回落葉又抽卿
自從一見桃華後 直至如今更不疑

 스님은 이 게송을 보시고 그가 깨달은 것을 따져 물어 서로 부합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연 따라 깨달아 통달하였으니 영원히 물러나거나 잃지 말고 잘 간직하여라."
 
{{위산록/四家語錄  59
}} 44.
 상림(上林)스님이 와서 참례하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찌하여 왔는가?"
 "갑옷과 투구를 완전히 갖추었습니다."
 "모조리 풀어버리고 와야만 나를 만날 수 있네."
 "풀어버렸습니다."
 스님은 혀를 차시면서 말씀하셨다.
 "쯧쯧, 도적도 아직 쫓지 않았는데 풀어버리고 어찌 하겠다는건가?"
 상림스님이 대꾸가 없자 앙산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좌우의 사람들을 물리쳐 주십시오."
 스님께서 손으로 읍(揖)을 하시며 "네, 네" 하셨다.
 상림스님은 그 뒤 영태(永泰)스님을 참례하고서야 그 뜻을 깨닫게 되었다.
 
 45.
 소산 광인(疏山翠人)스님이 참례하러 왔다가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시는 것을 들었다.
 "행각(行脚)하는 선객이라면 모름지기 소리나 물질〔聲色〕 안에서 잠을 자고, 소리나 물질 안에서 앉고 누워야만 하느니라."
 그러자 소산스님이 질문하였다.
 "어떤 것이 소리나 물질에 떨어지지 않는 소식입니까?"
 스님께서 불자를 번쩍 세우자 소산스님은 말하였다.
{{60  위앙록
}} "이는 소리나 물질에 떨어진 소식입니다."
 스님께서 불자를 내려놓고는 방장실로 돌아가 버리셨다. 소산스님이 깨닫지 못하고 바로 향엄스님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가려 하자 향엄스님이 물었다.
 "왜 더 머물지 않는가?"
 "저는 스님과 인연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인연을 말하는지 어디 얘기나 좀 해보게."
 소산스님이 이윽고 앞에 했던 대화를 전해주니 향엄스님은 말하였다.
 "나에게 할 말이 있다."
 "무슨 말씀입니까?"
 "말이 나와도 소리가 아니고 물질〔色〕 이전이어서 물건도 아니."
 "본래 여기에 눈 밝은 사람이 있었군요."
 이윽고 향엄스님에게 "앞으로는 스님께서 머무는 곳이면 제가 꼭 찾아 뵙겠습니다."
 그리고는 떠나갔다.
 스님께서 향엄스님에게 물으셨다.
 "소리와 물질에 관하여 물었던 그 조무래기 중은 어디에 있느냐?"
 "이미 떠났습니다."
 "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말해보게."
 향엄스님이 앞에 했던 대화를 말씀드리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위산록/四家語錄  61
}} "그가 뭐라 말하더냐?"
 "저를 매우 칭찬하였습니다."
 스님은 비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그 조무래기에게 봐줄만한 데가 있는가 했더니 원래 그랬었구나. 그 사람은 이후로 어디에 머물더라도 산이 가까이 있어도 땔감을 구할 수 없고, 물이 가까이 있어도 물을 마실 수 없으리라."

 46.
 자국 감담(資國惑潭)스님이 참례하자 스님께서 달을 가리켜 보여 주었는데 자국스님은 손을 세 번 내저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보지 못했다고 말하진 않겠네만 다만 대강 보았을 뿐이다."
 
 47.
 스님께서 법당에 앉아계신데 고두(庫頭)스님이 목어를 치자 화두(火頭)스님은 불덩이를 던지고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스님께서는 "대중 가운데 저런 사람이 있다니" 하시고, 이윽고 불러서 "왜 그랬느냐?" 하고 물으시니 화두스님은 말하였다.
 "제가 죽을 먹지 않았더니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목어소리를 듣고 기뻐하였습니다."
 스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62  위앙록
}} 뒷날 경청 도부(鏡淸道:864∼937)스님이 기뻐하며 말하였다.
 "위산스님의 대중 가운데 사람이 없는 줄 알 뻔하였다."
 
 와룡 구(臥龍球)스님이 말하였다.
 "하마트면 위산스님의 대중 가운데 사람이 있는 줄 알 뻔하였다."
 
 48.
 스님께서 진흙으로 벽을 바르시는데 상공 이군용(李軍容)거사가 찾아와 관복을 입은 채로 스님 뒤에 와서 홀(笏)을 단정히 들고 서 있었다. 스님께서 돌아보시고는 다시 곁의 진흙 소반에서 진흙을 집으려는 시늉을 하자 이군용거사는 홀을 움직여 진흙을 받아내는 시늉을 하였다. 스님께서는 진흙 소반을 던져버리고 함께 방장실로 돌아갔다.
 
  암두 전할(巖頭全豁:828∼887)스님은 이 말을 듣더니 말하였다.
 "아아! 약해져가는 불법이여. 가엾은 위산스님이 벽 바르는 것도 마치질 못하다니."
 
 명초 덕겸(明招德謙)스님은 말하였다.
 "당시에 어떻게 했어야 암두스님에게 간파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더니, "진흙 소반을 돌려 벽을 바르는 시늉을 하다가 버리고 돌아갔어야지"라고 대신하였다.
 
 황룡 오신(黃龍悟新)스님은 말하였다.

{{위산록/四家語錄  63
}} "암두스님이 평을 잘못했으니, 위산스님과 이군용거사의 기막힌 솜씨가 졸작이 되는 줄을 전혀 몰랐다 하리라."
 
 49.
 시어사(侍榮史){{* 시어사(侍御史) : 비법을 검찰하는 벼슬아치의 관명.
}} 육(陸)거사가 큰방으로 들어가면서 물었다.
 "스승 노릇하는 많은 스님네들이 밥이나 축내는 스님들입니까? 아니면 참선하는 스님들입니까?"
 스님께서 이 소리를 듣고 말씀하셨다.
 "밥이나 축내는 스님도 아니고, 참선하는 스님도 아니라네."
 "그러면 여기서 무얼 합니까?"
 "시어사께서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시게나."
 
 50.
 스님께서 하루는 유철마(劉鐵磨)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말씀하셨다.
 "어서 오시오. 노자우(老牛:`이 늙은 암소야'의 뜻)!"
 철마스님이 말했다.
 "내일 오대산(五台山)에 큰 재회(齋會)가 있는데 스님께서도 가시겠습니까?"
 스님께서 벌렁 눕는 시늉을 하시자 유철마스님은 나가버렸다.
 

{{64  위앙록
}} 정자 사일(淨慈師一:1177∼1176)스님은 말하였다.
 "대중들은 말하기를 `누워버린 것은 가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유철마는 분하고 수치스러워 가버렸다'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평소에 위산 늙은이의 허리를 꺾을래야 꺾을 수 없더니 철마스님에게 한번 밀려 자빠지고는 지금까지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하리라. 위산스님을 부추켜 일으키려 하느냐. 대중은 한마디 던져 보아라."
 대꾸가 없자 스님은 주장자로 대중들을 몽땅 쫓아버렸다.
 
 51.
 스님께서 하루는 원주스님을 불러서 그가 곧 오자 말씀하셨다.
 "내가 원주를 불렀는데 네가 왜 왔느냐?"
 원주스님은 대답하지 못했다.
 
 조산 본적(曹山本寂:840∼901)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스님께서 저를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또 시자를 시켜 수좌를 불러오라 하시고서는 수좌가 오자 말씀하셨다.
 "나는 수좌를 불렀는데 네가 왜 왔느냐?"
 수좌 역시 대답을 못했다.
 
  조산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시자를 시켜서 부르셨다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위산록/四家語錄  65
}}  법안 문익(法眼文益:885∼958)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조금 전에 시자가 불렀습니다."
 
 52.
 스님께서 상당(上堂)하시자 한 스님이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대중을 위해 설법해 주십시오."
 "나는 너 때문에 너무나도 피곤하다."
 그 스님은 스님께 절을 올렸다.
 
○ 뒷날 어떤 사람이 설봉 의존(雪峯義存:822∼908)스님에게 말씀드렸더니,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사람은 이처럼 노파심이 간절하였다."
 
 현사 사비(玄沙師備:835∼908)스님은 말하였다.
 "산두스님(山頭和尙:설봉)이 옛사람의 일을 그르쳤습니다."
 설봉스님이 이 말을 듣고는 바로 현사스님에게 물었다.
 "어느 곳이 노승이 옛사람의 일에서 빗나간 곳인가?"
 현사스님은 말하였다.
 "가엾은 위산스님이 그 스님의 질문을 받고 산산이 부서져 버렸습니다."
 설봉스님은 이에 깜짝 놀랐다.
 
 53.
 한 스님이 찾아와 절을 올리자 스님이 일어나는 시늉을 하{{66  위앙록
}}시니 그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일어나실 필요없습니다."
 "나는 앉은 적 없네."
 "저도 절한 적 없습니다."
 "어찌해서 절하지 않았느냐?"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 동안(同安)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스님(위산)의 행동은 괴이할 것이 없다."
 
 54.
 한 스님이 물었다.
 "위산의 삿갓 하나〔一頂笠〕를 만들지 않고는 막요촌(莫村:중국 서남쪽에 있는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으로 수·당대 초기에 공을 세워 그 자손들은 대대로 役을 면제받았다)에 이르지 못한다 하니, 무엇이 위산의 삿갓입니까?"
 스님께서 "이리 오너라" 하여 그 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가자, 스님께서는 그대로 걷어찼다.
 
 55.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서경(西京)에서 옵니다."
 "서경 주인공의 편지를 가지고 왔느냐?"
{{위산록/사가어록  67
}} "감히 함부로 소식을 통하지 못하였습니다."
 "천연 그대로 작가사승(作家師僧)이구먼."
 "남은 국물, 쉰 밥은 누가 먹는지요?"
 "그대만은 그것을 먹지 않으리라."
 그 스님이 구역질하는 시늉을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병든 중을 부축하고 나가거라."
 그러자 그 스님은 나가버렸다.
 
 56.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무심(無心)이 도이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그 주인공을 알아야 하리라."
 "무엇이 그 모르는 주인공입니까?"
 "그저 그대일 뿐, 다른 사람이 아니다."
 다시 말씀하셨다.
 "이제 모르는 그것이 바로 그대의 마음이며 그대의 부처임을 그대로 체득하기만 하면 된다. 만약 밖으로 향하여 하나하나 알음알이를 쌓아서 그것을 선도(禪道)라고 한다면 전혀 틀린다. 그것은 똥을 퍼다 붓는 것이지 결코 똥을 퍼내는 것이 아니어서 그대의 마음밭을 오염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68  위앙록
}} 57.
 한 스님이 위국(衛國)스님에게 참례하자 위국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시오?"
 그 스님은 말하였다.
 "하남(河南) 땅에서 옵니다."
 "황하(黃河:황하는 河北에 있다)는 맑던가요?"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스님(위산)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좀스러운 여우야! 가고 싶으면 가면 되지 망설여 무엇 하려느냐!"
 
 58.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셨다.
 "그대들은 각자 깨달은 것을 나에게 내놔보아라."
 이때 지화(圍和)상좌가 앞으로 나와 절을 올리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착함도 생각하지 말고 악함도 생각하지 말아라. 바로 이런 상태에서 지화상좌의 본래면목을 나에게 가져와 보아라."
 "바로 그런 상태는 제가 신명(身命)을 놓아 버릴 곳입니다."
 "그대는 공(空)에 떨어지지 않았을까?"
 "제가 공에 떨어질 만한 공이 있다고 보았다면, 무엇 때문에 그곳에다 신명을 놓겠습니까?"
 "이 자리에서 묻지 그러느냐?"
 "이 자리에서 스님께 물을 것이 있다고 보지를 않습니다."
{{위산록/四家語錄  69
}} "그대는 박복해서 우리 불법을 잡아 일으키지 못하겠구나."
 
 59.
 앙산스님과 북암주(北主)가 올라와 문안을 드렸는데 이때 한 관리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스님께서 보시고는 그 관리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옛 부처와 동참하고 왔구나."
 암주가 말하였다.
 "돌아가신 뒤에 이 말씀을 거론하는 이를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바로 지금은 어떠한가?"
 "혀를 물고 있을 수는 있어도 대답하라면 못하겠습니다."
 "관리가 보고 있는데 자기 말도 못하는군."
 "앙산스님이 이 대답을 탐탁하게 여기질 않습니다."
 "암주 노릇도 어렵겠군."
 
 60.
 스님께서 하루는 여의주(如意珠)를 꺼내 보여주시고 다시 이런(○◎)모습을 그리시더니 말씀하셨다.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이 여의주를 얻으리라. 말해라, 말해!"
 이때 어떤 스님이 말하였다.
 "이 여의주는 본래 스님 것이 아닙니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70  위앙록
}} "얻어도 쓸모가 없겠다."
 또 어떤 스님이 말하였다.
 "설사 저에게 준다 해도 둘 곳이 없습니다."
 
 61.
 한 스님이 물었다.
 "위로 모든 성인들로부터 지금까지에 대해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눈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바로 그것이 아닐는지요."
 "그게 무엇인데?"
 "조금 전에 대답한 것일 뿐입니다."
 "그대가 그것을 버렸으니 이젠 일삼지 말아라."
 
○ 장산 근(蔣山懃)스님은 말하였다.
 "질문도 너무 준험하고 대답도 지나치게 호사스러워 둘다  완전하지 못하였다."
 
 62.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백장스님의 진면목입니까?"
 스님께서는 선상(禪滅)에서 내려와 차수(叉手)하고 섰다. 그러자 그 스님이 또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진면목입니까?"
{{위산록/四家語錄  71
}}  스님께서는 다시 앉으셨다.
 
 63.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노승이 죽은 뒤에 산 밑에 가서 한 마리 물빛소〔水牛〕로 태어나 왼쪽 겨드랑에 `위산의 중 아무개'라고 쓸 터인데, 이때 위산의 중이 물빛소가 되었다고 해야겠느냐, 아니면 물빛소가 위산의 중이 되었다고 해야겠느냐? 결국 무어라고 불러야 하겠느냐?"
 앙산스님이 앞으로 나가서 절을 올리고 물러났다.
 
운거 도응(雲居道膺:?∼902)스님이 말하였다.
 "스님에겐 다른 이름이 없다."
 
 자복 여보(資福如¿)스님은 대신 일원상(一圓相)을 만들어 일으켜 세웠고, 파초 청(芭蕉淸)스님은 대신 이 ○牛의 모양을 만들어 보여주면서 이르기를 "같은 길을 가는 사람만이 알리라"하였다.
 
 남탑 광용(南塔光涌)스님이 말하였다.
 "1천 5백의 선지식들이 겨우 반씩만 얻었을 뿐이다."
 
 파초 철(芭蕉徹)스님이 대신하되 "그때 이런 모양(○物○禮)을 지어보였어야 하리라" 하고는 또 말하였다.
 "할 말 다했고 주도 달아주었으니 깨닫는 것이 좋겠다."
 
 
보령 용(保寧勇)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같은 분은 진탕에도 들어가고 물에도 들어간다."
 

{{73
}}3. 천 화


 스님께서 종문의 가르침을 펴고 선양하기 40여 년에 통달한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대중(大中) 7년(853) 정월 9일에 세수하고 편안히 앉은 채로 태연히 입적하시니 세수(世困)는 83세, 법랍은 64세였다. 위산(山)에 탑을 세우고 시호는 대원선사(大圓禪師)라 하였으며, 탑호는 청정(淸淨)이라 하였다.
 
{{77  위산경책
}}위산경책(僞山警策)

 

 

 


 업(業)으로 받은 몸은 형체에 매임을 면치 못하여 부모가 남겨주신 몸을 받고 여러 인연을 빌려 이루어진 것이다. 4대(四大)로 지탱해 가나 그것들은 항상 서로 등지니 덧없는 생노병사가 우리에게 예고없이 다가와 아침엔 살았다가도 저녁에 죽어 찰나에 다른 세상이 된다. 마치 봄 서리나 새벽 이슬 같아서 잠깐 사이에 말라버리며, 벼랑 위의 나무나 우물 속의 등넝쿨과도 같은데 그것이 오래갈 수 있겠는가. 생각생각 빨리 지나 한 찰나에 숨이 떨어지면 그대로가 내생인데 어찌 편안하게 허송세월하랴.
 그대들은 좋은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하지도 않고 6친(六親)을 이별하였다. 나라를 다스리지도 않고 가업(家業)의 상속을 모두 버렸으며, 속세를 멀리 떠나 머리 깎고 스승에게 계(戒)를 받았다. 그렇다면, 안으로는 망념 이기는 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밖으로는 다투지 않는 덕을 키워서 티끌 같은 세상에서

{{위앙록  78 
}}아득히 벗어나기를 기약해야 한다. 그런데 계를 받자마자 "나는 비구(比丘)로다"하며 신도들이 시주한 상주물(常住物)을 먹고 쓰면서도 그것이 어디서 왔는가를 생각할 줄 모른다. 그리고는 으례 "공양을 받을 만하다"고 하면서 먹고 나서는 머리를 맞대고 세상잡사만을 시끄럽게 떠드니, 이것이야말로 그저 한때의 즐거움만을 찾는 것일 뿐, 그 즐거움이 결국에는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줄을 모르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세월 속에서 6진(六塵)에 휘둘려 한번도 돌이켜보지 못하는구나. 세월이 갈수록 받아 쓰는 것이 늘어나 시주의 은혜가 두터워지며 움찔했다 하면 해가 지나는데 버릴 생각은 하지 않고 더욱 모아 허망한 육신만 붙드는구나.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도를 닦고 몸을 단속하는 데에는 옷과 밥과 수면, 이 세 가지를 넉넉하게 하지 말라"고 경계하며 법도를 지어주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쉬지 않고 탐내느라 세월을 보내 어느덧 흰머리가 된다. 방향을 잡지 못한 후학이라면 반드시 선지식에게 널리 물어야 하는데도 "출가한 이는 옷과 밥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만 생각한다. 부처님께서는 먼저 계율을 정하여 발심한 이를 인도해 주시고 몽매함을 열어 주셨는데 그 법도가 빙설처럼 청정하다. 우선 선을 실천하고 악을 예방하는 것으로 발심을 단속케 하시며, 나아가 자세한 조목으로 모든 폐단을 개혁하시어 계율 도량을 이루셨다. 그런데도 학인들은 전혀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궁극적인 이치로 가는 최상 법문〔了義上乘〕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애석하다. 일생을 부질없이 지내면 후회한들 돌이킬 수 없다.
{{위상경책  79
}} 교리에는 원래 뜻을 두지 않았으므로 현묘한 도를 깨달을 씨앗이 없다. 그러고도 나이 먹고 법랍이 많아지면 속은 빈 채 아만을 부리며, 어진 벗과 친하려 하지 않고 오직 거만할 줄만 알 뿐이다. 법도와 계율을 몰라 전혀 조심성이 없어서, 말끝마다 점잖치 못하게 큰소리치며 위 아래 사람을 공경하지 않으니, 바라문(婆羅門)의 떼거리와 다를 바가 없다.
 공양을 할 때는 바릿대 소리를 시끄럽게 내다가, 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먼저 일어나 거슬리고 괴팍스럽게 행동하니 사문의 체통이라곤 전혀 없다. 불쑥불쑥 섰다 앉았다 하여 남들을 놀라게 하니 자그마한 법도와 소소한 몸가짐도 되어 있지 않은데 무엇을 가지고 단속하겠는가. 그래가지고는 새로 배우는 후배들이 본받을 것이 전혀 없다.
 그러다가 남을 훈계하게 되면 `나는 산승이로다'하나 불교적인 수행은 들어 본 적도 없고 오직 티끌같은 경계에만 생각을 둔다. 이같은 소견은 모두 발심부터가 졸렬하고 게을러 도철(:욕심이 많아서 자신을 망치는 짐승)처럼 세속에서 세월을 그럭저럭 보내다가 드디어는 황폐해진 것이니, 어느 결에 걷지 못할 정도로 늙게 되면 하는 일마다 담장을 마주한듯 캄캄하다. 후학이 물어도 지도할 말이 없고, 설사 있다 해도 경전의 말씀과는 관계없는 말이다. 혹 업신여기는 말을 듣기라도 하면 즉시 예의가 없다고 화를 내면서 꾸짖는다.
 그러다가 하루 아침에 병상에 눕게 되어 뭇고통이 조여오면 아침 저녁으로 생각해 보아도 속으로 두려워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앞길이 아득하다.
  {{80  위앙록
}}이러고 나서야 허물을 후회하나 마치 당장 목이 타는데 우물을 파는 격이니 어찌 하겠는가! 일찌감치 수행하지 않고 나이 들어 여러가지로 허물이 많음을 스스로 한스러워하다가 죽는 마당에 가서는 손을 허우적거리며 두려움에 떤다.
 그다음에는 막아 놓았던 비단뚜껑을 뚫고 병 안의 새가 날아가듯, 식심(識心)이 업(業)을 따라가는데, 마치 여러 사람에게 빚진 사람이 힘센 빛장이에게 먼저 끌려가는 것과 같아서, 마음도 여러 갈래지만 업이 무거운 쪽으로 떨어진다.
 죽음을 재촉하는 귀신이 생각생각에 정지하지 않으니, 수명은 더이상 연장하지 못하며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아서 인천(人天)의 3계에 태어남을 면하지 못한다. 이렇게 받아온 몸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겁수(劫數)를 따져볼 수도 없다. 회환과 탄식으로 가슴이 저려오니 어찌 입을 봉하고 경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한스러운 것은 상법(像法), 말법(末法) 시대에 태어나 부처님 세월이 아득하다는 점이다. 불법은 생소하고 사람들은 게으름을 많이 피우므로 간략히나마 좁은 소견을 펴서 뒷사람들을 일깨우려 하니, 만일 뽐내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생사윤회에서 도망하기 어려울 것이다.
 
 출가한 사람이라면 발을 들어 세속을 뛰어넘어 몸과 마음을 그들과 달리 해야 한다. 부처의 종자를 이어 융성하게 하고 마군을 항복받아서 4은(四恩:부모·스승·국가·시주의 은혜)에 보답하고 3계 중생을 제도해야 하니,
  {{위산경책  81
}}만약 그렇지 못하면 외람되게 사문의 대열에 끼어들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언행이 거칠고 신도의 시주물만 헛되게 받으며 옛사람들의 삶과는 조금도 닮아가지 않고 정신없이 일생을 보내니 장차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당당한 사문의 모습이 봐줄만 하니, 지난 세상에 선근(善根)을 심어 이렇게 남다른 과보를 받은 것인데, 여기서 그저 팔짱을 끼고서 시간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부지런히 닦지 않으면 과보를 성취해 낼 원인이 없으니 어찌 일생을 부질없이 지내랴. 이렇게 하면 내생의 업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버이를 하직하고 결연한 마음으로 먹물 옷을 입은 것은 무엇을 뛰어넘으려 했던 것인가. 아침 저녁으로 생각하면 어찌 마음 편하게 세월을 보내랴. 마음속으로 불법의 대들보가 될 것을 다짐하여 뒷날 본보기가 되게 하라. 설사 항상 이와같이 한다 해도 조금밖에 상응하지 못한다.
 말을 꺼냈다 하면 반드시 경전에 들어맞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도 옛것을 상고해야 하며, 우뚝한 몸가짐과 고고한 기상을 가져야 한다.
 먼 길을 갈 적에는 좋은 도반과 동행하여 자주자주 눈과 귀를 맑게 하고, 머무를 때에도 반드시 도반을 가려 때때로 아직 듣지 못한 것을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속서(俗書)에도 이르기를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고 나를 완성시켜 준 사람은 벗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착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마치 안개와 이슬 속을 가는 것 같아서,
  {{82  위앙록
}}비록 당장에 옷이 젖지는 않아도 점점 촉촉하게 적셔진다. 한편 악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나쁜 지견(知見)을 길러서 아침 저녁으로 악한 짓을 하는데, 가까이는 목전에서 과보를 받고 멀게는 죽은 뒤에 윤회에 들게 된다.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영원히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렵다. 충성스러운 말이 귀에는 거슬리나 어찌 마음에 새겨두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음을 씻고 덕을 길러 자취와 명성을 숨기고, 정신을 깨끗하게 길러서 마음에 시끄러운 경계를 끊어야 한다. 만일 참선(參禪)으로 도를 익혀 방편(方便)을 단박에 초월하려 하면, 마음을 현묘한 나루터에 두고서 정밀하고 묘함을 끝까지 파고 들어야 한다. 심오한 뜻을 결택하여 참 근원을 깨닫도록 해야 하며, 선지식에게 널리 묻고 좋은 도반을 가까이 해야 한다. 이 참선은 그 묘한 도리를 깨닫기 어려우니 정말로 빈틈없이 마음을 써야 한다. 만일 그러던 중에 본심〔正因〕을 단박에 깨달으면 그대로 티끌세상과 수행점차〔階級漸次〕를 벗어나니, 이것이 곧 3계 25유(二十五有)를 타파하는 것이다. 안팎의 모든 법이 실제가 아니라 마음을 따라 변하여 일어난 것으로, 모두가 거짓 명칭임을 알아서 절대로 마음을 그쪽으로 끄달리지 말라. 감정이 사물에 끄달리지만 않는다면 사물이 어찌 사람을 장애하랴. 법성(法性)이 흐르는대로 맡겨둘 뿐, 끊으려 하지도 말고 이으려 하지도 말라. 소리를 듣고 물건을 볼 적에도 일상대로 하며, 이쪽과 저쪽에 응용하되 조금도 모자라게 하지 말라.
 이렇게 살아가면 실로 속절없이 법복(法服)만을 입은 것은 {{위산경책  83
}}아닐 것이다. 나아가 4은(四恩)에 보답하고 3계 중생을 구제하며, 세세생생토록 도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끝내는 성불을 기약하리라. 3계의 손님으로 왕래하면서 나고 죽는 이들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이 참선이 가장 오묘하니, 하겠다는 마음만 내라. 반드시 그대를 속이는 말은 아닐 것이다.
 단박에 생사를 초월하지 못할 중간부류라면 우선 교학에 마음을 두어 경전을 반복해서 익혀야 한다. 이론을 치밀하게 연구하여 전해 주고 널리 펴서 뒷사람을 지도하여 부처님의 은덕에 보답해야지 그저 세월만 보내서는 안된다.
 반드시 이와같이 해나갈 것 같으면 모든 일상이 승려 가운데서 법기(法器)가 될 만하다. 보지도 못하였느냐? 소나무에 감긴 칡넝쿨이 천길이나 솟아오르는 것을. 훌륭한 바탕에 의지해야만 널리 이익될 것이다.
 재(齋)와 계(戒)를 성실히 닦아서 부질없이 부족하거나 넘치게 하지 말라. 출가인이 된 것은 세세생생토록 닦아온 수승한 인연 때문이니, 헛되이 날을 보내고 멍청하게 시간을 보내서는 안된다. 세월이 아까운데도 더 닦으려 하지 않고 부질없이 시방(十方) 신도의 시주물만 소비하고 나아가 4은(四恩)을 저버린다.
 쌓인 업은 더더욱 깊어가고 마음의 티끌은 막히기 쉬워 부딪치는 곳마다 걸리니, 사람들에게 업신여김과 기만을 당한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그가 장부였다면 나도 대장부니 결코 자신을 가볍게 여기고 퇴굴해서는 안된다"라고 하였다. 만일 이렇지 못하면 부질없이 절집에 있으면서 일생을 그럭저럭 {{84  위앙록
}}보낼 뿐, 조금도 이익이 없을 것이다.
 간절히 바라노니 맹렬한 뜻과 각별한 마음을 내어, 상근기를 바라보고 처신할지언정 함부로 용렬하고 비속한 이들을 따르지 말라. 금생에 모름지기 결단하라. 생각해 보면 깨달음이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알음알이를 쉬고 반연을 잊어 모든 번뇌와 마주하지 말라. 마음은 빈 것이고 경계도 고요하건만 단지 오래 막혔기 때문에 통하지 못할 뿐이다.
 이 글을 잘 읽고 수시로 경책하여 굳세게 주관을 세워 인정을 따르지 말라. 업과(業果)에 끌리면 진실로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목소리가 온화하면 메아리가 순조롭고, 모습이 반듯하면 그림자가 단정하다. 이처럼 인과가 분명한데 어찌 근심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랴.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기를 "가령, 영원한 세월이 지난다 해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고 인연이 회합해 만날 때 자기 과보를 다시 받는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3계라는 형벌이 사람을 얽어맨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열심히 닦고 부질없이 날을 보내지 말아라. 5욕생사가 허물과 병통임을 깊이 알아 비로소 수행할 것을 권하노니, 백천겁토록 어디서나 다같이 도반이 되기를 바란다.
 명(銘)으로 말하리라.
 
허깨비 몸, 꿈속의 집이여
허공 꽃이어라
앞길도 다함 없는데
{{위산경책  85
}}뒷길이라고 짧겠는가
 
여기서 나와서 저기에서 사라지니
떴다 잠겼다 지칠대로 지쳤도다
3계 윤회 면치 못했는데
어느 때에 쉬어지랴.
세간을 탐내고 그리워하여
5음·12연으로 이 몸뚱이 이루니
태어나서 늙어지도록
하나도 얻은 것 없도다.
근본무명이 그 때문에 미혹이 되고 말았으니
시간이 아깝구나
찰나도 헤아리기 어렵거늘
금생을 부질없이 보내면 내세에도 꽉 막히리라.
미혹에서 미혹에 이르는 것
모두 6적(六己)이 씨앗되어
6도(六道)에 오락가락
3계에 기어다니네
 
일찌감치 눈 밝은 스승 찾고
덕 높은 도반을 가까이 하여
몸과 마음을 결택하고
애욕의 가시덤불일랑 모두 버려라.
세상은 본디 들뜨고 비었는데
뭇 인연이 어찌 사람을 핍박하랴
법의 이치 연구하려면
깨닫겠다는 목표를 세우라.
 
마음과 경계 함께 버리고
새겨두거나 기억하지 말라
6근(六根)이 고요하면 하는 일마다 고요하고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모든 법 저절로 쉬어지리라.
 
* 전좌(冶座):선방에서 대중들의 상좌(滅座)·와구(臥具)·음식(飮食) 등의 사무를 맡은 소임을 말한다.
* 등롱(燈籠):절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엄구로, 별의미 없이 사용하는 말. 노주(露柱)에 짝이 되어 쓰인다.
* 줄탁(啄):제자의 노력과 스승의 지도가 딱 들어맞는 것을 병아리가 부화되는 것에 비유한 것.
* 정성성문(定性聲聞):고정적인 성문승.
* 일시적인 사건:무종의 법난 때 강제로 환속되었던 일을 말함.
* 작가(作家):탁월한 역량과 안목을 갖춘 선승.
* 조도(鳥道)와 현로(玄路):새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과 아주 그윽한 거리를 말함. 여기서는 깨달은 이치를 여기에 비유했다.
* 신위(信位):신앙의 단계.
* 인위(人位):믿음의 자취마저도 사라지고 본래면목이 그대로 드러난 개성의 단계.
* 정어(呈語):말을 바친다는 뜻으로 선사들이 자신이 수행하는 상태를 스승께 언어로써 말씀드려 감정을 받는 것.
* 시어사(侍榮史):비법(非法)을 검찰하는 벼슬아치의 관명.
* 노자우(老特牛):늙은 암소라는 뜻이 바뀌어 수행이 완성된 사람에게 붙여주는 경칭.
* 전어(轉語):본래의 말에서 변하여 나온 말. 격외(格外)의 이야기.
* 산두스님(山頭和尙):산두(山頭)는 장례식장의 뜻으로써 여기서는 설봉스님을 산송장에 빗대어 한 말이다.
* 일정립(一頂笠):삿갓의 한 종류인데, 여기서는 위산(僞山)의 종지를 뜻.
* 막요촌(莫役村):`부역이 없는 마을'이란 뜻으로 위산 밑에 있는 마을 이름.
* 작가사승(作家師僧):본색종장(本色宗翌) 또는 출격종장(出格宗翌)의 뜻.
* 4대(四大):육신을 이루고 있는 세 가지 요소로, 지(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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