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모았던 스님 가운데 한 분이 종림스님이다. 스님은 바로 750여 년간 해인사 장경각에서 잠자던 고려대장경 1514종의 경전, 16만5000여만 자를 한자도 빠짐없이 CD 15장에 담아낸 장본인이자 일반인에겐 그저 ‘빨래판 같은’ 목판 대장경에 생명을 불어넣은 주인공이다.

게다가 올해는 스님이 몸 담아온 고려대장경연구소가 20년을 맞는 해이자 그동안 축적한 성과물을 바탕으로 종립 동국대와 공동으로 ‘디지털 통합대장경’ 구축에 나서는 뜻 깊은 해이다.

스님을 만난 것은 해가 바뀌기 전인 지난 12월14일 서울 안암동 보타사 대원암 경내 중앙승가대학 건물 4층 고려대장경연구소 사무실. 대원암은 근대불교의 대석학인 석전 박한영스님과 탄허스님이 경전 번역불사를 하던 곳이다.

초조대장경에 이어 교장(속장경)을 완성한 대각국사 의천은 대장경의 편찬을 ‘천년의 지혜를 정리해 천년의 미래로 전해주는 일’이라고 했다. 2011년은 고려인에게 미래였던 과거의 천년이 끝나고 새로운 미래의 천년이 시작되는 해였던 셈이다.

대장경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긴 했지만 일반인들에겐 여전히 생소하다. 팔만대장경은 알아도 초조대장경과 교장 등은 잘 모른다. 목판이나 완질의 인쇄본이 없는 것도 한 가지 원인일 수 있다. 초조대장경 인본(印本)의 존재가 알려진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과거의 유산은 새로운 문화 창조의

바탕이 될 때만 살아있는 문화재 돼”

“현재 일본 교토의 남선사(南禪寺, 난젠지)에 1800여권, 국내 사찰 박물관 도서관 등에 300권, 일본 쓰시마 역사민속자료관에 600여권 있는 것으로 조사됐어요. 남선사는 그동안 일본학자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을 만큼 초조본 대장경을 애지중지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스님은 남선사의 협조로 초조대장경 조사와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끝내고 복원간행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려대장경은 인쇄술을 비롯한 하드웨어는 물론 서지, 편집 등에서 세계 최고의 지식문화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불교 경전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 역사, 설화, 사전 등이 모두 포함돼 있는 당대의 ‘포털사이트’이기도 하지요. 서지학적 중요성 외에 ‘문화콘텐츠의 보물창고’라도 할 만하지요.”

그런 초조대장경을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다시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대장경 간행에 버금가는 작업이다. 팔만대장경이 어떤 과정을 거쳐 유통되었는지 다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초조본 복원은 바로 팔만대장경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연결고리이기도 하다는 것.

이런 점에서 올해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동국대와 함께 추진하는 통합대장경 구축불사는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고려대장경을 중심으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한문 등으로 기록된 모든 전통적인 대장경과 한글대장경, 일본어대장경, 영역 불전(佛典) 등 다양한 언어의 불전들을 통합하는 일이다.

“시대와 나라에 따라 달리 만들어진 경전이 디지털세계에서 국제적인 통합시스템과 글로벌 콘텐츠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중국 돈황석굴에서 발견된 필사본, 지리산 화엄사에 파편 조각으로 남아있는 신라 화엄석경도 탁본 등을 통해 연구 조사해 통합대장경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필사본에서 목판본, 활자본으로 넘어오는 과정도 밝혀질 것입니다.”

고려대장경 DB 이어

동국대와 함께

통합대장경 구축 나서

고려는 현재 해인사 팔만대장경보다 220여년 앞선 1011년~1087년 거란의 침략을 계기로 첫 번째(초조)대장경을 만들었다. 송나라 개보대장경(983년)을 복제해 만들어낸 세계 두 번째 대장경이다. 이어 대각국사 의천이 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던 불전의 주석 연구서들을 모아 ‘교장’을 만들었다.

대구 부인사에 보관되어오다 몽골침략 때 불타 없어졌지만 고려인들의 노력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업적이다. 초조대장경과 이 교장을 근간으로 팔만장의 목판에 다시 새긴 것이 바로 팔만대장경이라 불리는 재조대장경(1236~1251)이다.

초조본과 교장, 재조대장경을 통틀어 고려대장경이라고 부른다. 초조대장경을 시작으로 재조대장경의 완성에 걸린 기간은 240년. 일본 역시 끊임없이 목판대장경을 조성하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엄청난 일에 대한 도전은 사실 아주 작은데서 시작됐다. 책 한 권이다. 1980년대 중반 해인사 도서관장을 하고 있을 때 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을 읽었다. 아메바에서 지능이 발달한 인간이 컴퓨터를 발명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컴퓨터가 세상을 바꿀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스님은 전산학원에 가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8비트 컴퓨터가 최신기종이던 시절이다. 처음에는 도서관의 장서를 분류하고 팔만대장경이 목록을 천공카드로 입력하는 것이 전부였다. 한문 작업은 불가능해 한글로 썼다. 그러면서도 팔만대장경 전체를 컴퓨터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인사에서 방 한 칸 얻어 시작한 연구소가 서울 마포, 흑석동, 이태원, 안암동 등의 셋방을 떠도는 사이 인터넷은 급속도로 발달했고, 고비를 맞았을 때 삼성의 관심과 지원은 큰 힘이 됐다. 팔만대장경의 이미지와 글자 하나하나가 컴퓨터 속에 채워졌다.

2000년에는 세계 최초로 5만3000자에 이르는 한자를 모두 입력해 팔만대장경의 전산화를 마쳤다. 2004년에는 팔만대장경의 옛 한자(異體字)를 현대의 한자로 바꾸는 작업을 거쳐 ‘고려대장경 2004’를 발표했다. 2004년부터 조사와 촬영을 시작한 남선사 소장 고려대장경 초조본 1800여권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6년간의 작업 끝에 2009년 11월에 마쳤다.

“과거의 유산은 새로운 문화 창조에 바탕이 될 때만 살아있는 문화재가 된다”고 했던가. 첨단정보화시대의 최대불사인 통합대장경 구축불사가 본궤도에 이르면 스님은 고향에 책 박물관을 짓고 또 다른 일을 저지를 지도 모른다. 인지과학과 인공지능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사이버공간의 불국토 구현이다. ‘내안의 불성(佛性)유전자가 어디서 왔는가’를 앞당겨 밝혀내는 또 하나의 불사다.

宗林無言山猶在

古人已云僊佛成

壇徒昨日唱喧歌

留聲且上萬里程

“종림스님 말 없어도 산은 그대로 있고 옛사람 일렀거니 이곳은 이미 성불을 이룬 곳, 운수단 일행들 어제 신나게 노래도 불렀었지. 그 소리 남겨둔 채 오늘 다시 만리 먼 길 오르도다.”

지난해 스님과 함께 중국여행을 함께 한 건국대 교수의 시 ‘여산을 떠나며(去廬山)’다. 다소 어눌해 보이지만 대장정 끝이면 쏟아내는 스님의 함축된 표현이 무엇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 종림스님은 …

1944년 경남 안의에서 출생, 동국대 인도철학과를 졸업했다. 1972년 해인사에서 최근 입적한 지관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오대산 상원사를 비롯해 여러 선방에서 화두를 받기보다는 스스로의 과제를 풀기위한 정진을 했다.

해인사 도서관장, 월간 <해인> 편집장, 해남 대흥사 선원장, 일본 하나조노대학 국제선학연구소 연구원, 세계전자불전협의회 공동의장, 2006년 한국불교학결집대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3년 고려대장경연구소를 설립해 소장을 지냈으며, 2005년부터는 사단법인 ‘장경도량 고려대장경연구소’ 이사장으로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올해부터는 동국대와 함께 디지털통합대장경 구축에 나선다. 지은 책으로 <종림잡설-망량의 노래>가 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한일공동 초조대장경복원간행 사업’ 의미를 담은 <우리 곁으로 돌아온 초조대장경>을 연구소 명의로 펴내기도 했다. 

■고려대장경연구소…  

1993년 4월 1일 고려대장경연구소 창립

1996년 6월 세계 최초 고려 재조대장경 전산화본 입력완료

2000년 12월 고려대장경 전산화본(CD) 발표 및 봉정식

2004년 5월 고려대장경 감교록 출판

9월 디지털고려대장경2004 발표

2004년 9월 한일공동 초조대장경 디지털DB 구축 협정서 체결(일본 교토)

2006년 6월 고려대장경 지식베이스 구축사업 시작

2007년 4월 ‘2011년 고려대장경 천년의 해’ 선언식(세종문화회관)

2008년 7월 학술진흥재단 지원프로젝트 연구사업 시작

2010년 1월 초조본대장경 조사완료 보고회(일본 교토)

2010년 2월 초조대장경 복원간행사업에 대한 업무협약 체결(대구시)

2010년 6월 한일공동 초조대장경복원간행위원회 발족식(국립중앙박물관)

2011년 3월 초조대장경 복원간행본 봉정식(대구 동화사)

2011년 6월 고려대장경 천년기념 국제학술대회(대구 인터불교호텔)

2011년 7월 고려 초조대장경 천년기념 특별전(대구국립박물관)

2011년 9월 초조대장경 천년기념 특별전(불교중앙박물관)

2011년 11월 초조대장경 특별전(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